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팻 라일리 (문단 편집) ==== 마이애미 히트 ==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Pat_Riley.jpg|width=300]] 이렇게 들어온 팻 라일리는 이전까지 글렌 라이스 중심의 중위권+비인기팀이었던 마이애미 히트의 체질개선을 시작했다. 그는 부임 첫 해에 [[샬럿 호네츠]]에서 알론조 모닝, 1996년에 [[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]]에서 [[팀 하더웨이]]를 트레이드로 각각 영입한 뒤 12월에는 자신의 오른팔인 랜디 펀드를 단장으로 불러들여 순식간에 동부의 강호로 급부상, 1996-97시즌에는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성적인 61승을 기록하기도 했다.[* 레이커스 감독 시절엔 60승 이상 정규시즌이 많았고, 닉스 감독으로 있을 때였던 1992-93시즌에 60승을 기록하였다. NBA 감독으로 있으면서 3팀을 정규시즌 60승으로 이끈 건 매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.] 게다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뉴욕 닉스와의 피 튀기는 라이벌리를 주도하기도 했다. 2000년에 P.J. 브라운 등 패싸움 농구의 주역들을 샬럿 호네츠의 앤서니 메이슨 등과 맞바꿔 팀을 바꾸고자 했으나, 알론조 모닝의 신장이상으로 팀에서 빠지고 메이슨 등 대형 트레이드로 사들인 선수들이 제 활약을 못해 2001-02시즌부터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연거푸 실패했다. 설상가상으로 젊은 선수들이 라일리의 지도방식에 불만을 드러내기에 이르자 결국 2002-03시즌을 끝으로 스탠 밴 건디 코치에게 물려주고 사임하였다. 이후 구단 사장으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리빌딩에 전념하면서 케런 버틀러와 [[드웨인 웨이드]]를 드래프트로 지명하고, 외국리그에서 뛰고있던 [[유도니스 하슬렘]]같은 숨은 인재도 찾아내는 등 초석을 다졌고, 2004년 플레이오프에 2라운드까지 진출하면서 어느정도 성공적인 리빌딩을 마쳤다. 그후 [[샤킬 오닐]], [[앤트완 워커]], [[제이슨 윌리엄스]] 등을 데려오면서 팀을 단번에 우승후보권 팀으로 끌어올렸다. 2005-06시즌 중반 스탠 밴 건디 감독이 사임하고 감독직에 복귀했다.[* 이때 거의 3년만에 현장복귀였던 탓에 논란이 좀 있었다. 본인도 지난 3년간 사장으로서의 업무만 하다보니 작전집을 본적이 없었다고 인정했을 정도. 다만 스탠 밴 건디 사임전까지 마이매이의 성적이 11승10패로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의 성적치고는 너무 부진했다. 팻 라일리로서는 스탠 밴 건디를 계속 밀고 가고 싶어도 중반까지의 성적이 좋지 못했고, 본인도 구단주주들의 눈치와 압박을 무시할수 없는데다, 시즌이 어느정도 지난상황에 새 감독을 찾기도 쉽지 않았을테니, 라일리의 감독복귀는 자의반 타의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.] 감독 복귀 이후 2006년에 [[댈러스 매버릭스]]를 꺾고 파이널에서 승리하며,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로 우승컵을 안겨주었다. 그러나 바로 다음시즌에 07년 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 불스에게 4전 전패로 깨졌고, 또 다음시즌에는 주축선수들의 부상과 노쇠화로 15승 67패라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. 결국 팻 라일리는 자신의 오른팔인 [[에릭 스폴스트라]] 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면서 지도자 일선에서 물러났고, 랜디 펀드 단장과도 12년만에 결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